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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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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Category 2 중세・근세의 유파와 학파(中世・近世の流派と学派)
타이틀(Title)
훗코신도
일본어표기
復古神道
본문(Text) 순(純)신도, 고도(古道)신도, 국학(国学)신도, 신도복고파(神道復古派)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근세 국학의 신도사상(古道)을 총칭하는 말로서 사용되는 일이 많다. 이 경우는 붓카(仏家)신도나 쥬카(儒家)신도에 비해서 불교・유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신도를 이상으로서 추구하는 사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국학 전체의 신도사상이 아니라 영혼관, 유명관(幽冥観)의 체계화로 종교적 성격이 강해진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의 유파를 이어받고, 왕정복고・존양운동(尊攘運動)을 전개한 국학계신도를 말하는 경우도 많다. 즉 국학자에 의한 막부말・유신기의 운동 과정에서, 국학자의 신도를 ‘훗코(復古,복고)’라고 칭하게 되었다. ‘훗코신도’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게이오 4년(慶応,1868) 3월의 신도사무국에서 입안된 『皇国内宗門, 復古神道ニ御定被仰出』라는 문장에서부터다.
국학계 신관(神職)의 조직화는 사원의 이단(離檀)운동과 연동해서 각자가 신관으로 소속되어 있던 전통적 진기도 가문(神祇道家)의 시라카와가(白川家)・요시다가(吉田家)에 기원을 두고 시작되었고, 진기관(神祇官) 재흥과 진기도(神祇道) 재흥운동으로써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히라타계(平田系) 국학을 채용한 진기하쿠 가문(神祇伯家) 시라카와가(白川家)가 세력을 확대해 갔다. 거기서 요시다가도 신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야노 하루미치(矢野玄道)를 요시다의 학료(学寮)로 맞아들이고, 종래의 요시다가의 설에서 「純粋之古道」로 복고하고, 진기도복고(神祇道復古)의 신기학관(神祇学館)은  ‘공명세대(公明世大)의 본교(本教)’라고 표명했다. 이 경우의 복고는 불교・유교 이전이라기보다도 구체적으로는 전통적 신기도인 요시다・시라카와 이전, 중세이전의 순고도(純古道)를 의미한다. 이 히라타계 국학자에 의한 비시라카와(非白川)・비요시다(非吉田)의 신기관 부흥운동은 제정일치・진무창업론(神武創業論)의 심화와 함께 전통적인 진기도 가문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후 복고의 내실을 둘러싸고 두 파로 나눠졌다. 다마마츠 미사오(玉松操), 야노 하루미치 등의 히라타파 직계 국학자의 복고는 교토의 연신층(延臣層)과의 밀접한 관계 하에, 율령진기관제(律令神祇官制)를 확립하고 국가의 종교・도덕생활 전반을 다지고, 서양문화의 영향을 배제하고 한학과 불교를 뛰어 넘자는 것이었다. 한편, 죠슈벌(長州閥)의 유신공신에 이어서 국학 사대인관(四大人観)을 확립한 오쿠니 타카마사(大国隆正)의 대양이론(大攘夷論)을 계승한 쓰와노파(津和野派)는 율령진기관의 제사가 아닌 문자 그대로 진무(神武)천황에게 배운 천황신제(天皇親祭)의 복고로 제정일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진무창업이란 율령적 왕정복고가 아닌 ‘고잇신(御一新,메이지유신의 옛말)’과 같은 의미였다. 그리고 히라타 아츠타네의 유명관을 이어받아 ‘훗코신도종문(復古神道宗門)’의 교학을 확립하여 기독교에 대항할 수 있는 정교일치를 목표로 하고, 불교・한학도 동원한 교도직에 의해 국민교화를 꾀했다. 쓰와노파는 이 신도중심의 대교(大教)선포에는 좌절했지만, 근대국가에 적합한 제정일치정책의 실현에 노력했다. 그러나 야노 등의 히라타파는 쓰와노파와 대립하고, 어디까지나 진기관부흥을 주장하였으며, 유・불에 대한 대항의식과 배외주의도 버리지 않고 정부의 방침에 저항했다. 메이지(明治)시대에는 이와 같은 시대착오적 주장을 했던 히라타파 국학자가 복고파신도가 혹은 복고파국학자로 불렸다. 그 후에도 히라타파의 유파를 잇는 신도가・신관에 의한 진기관 부흥운동은 이어졌지만, 근대적인, 문헌학이나 국어학, 역사학으로 재편성된 국학의 학문적 측면과 점차 괴리가 생겨났다. 다이쇼(大正) 연간부터 철학사・사상사의 관점에서 근세국학이 주목을 받게 되자, 중세 이전의 신도론 중 사대인(四大人)의 고도론(古道論)을 순신도, 국학신도, 복고파국학, 훗코신도 등으로 칭하게 되었다.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오쿠니 타카마사(大国隆正)
모리 미즈에(森 瑞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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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kko Shint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