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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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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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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Category 2 중세・근세의 유파와 학파(中世・近世の流派と学派)
타이틀(Title)
핫케신도
일본어표기
伯家神道
본문(Text) 헤이안(平安)시대 후기부터 진기관(神祇官)의 장관인 하쿠(伯,백작)를 대대로 세습한 시라카와하쿠오가(白川伯王家)에게 전래된 신도. 시라카와(白川)신도라고도 한다. 원래 진기하쿠(神祇伯)로는 진기씨족인 나카토미씨(中臣氏)가 많이 임명되었는데, 고세(巨勢), 이시카와(石川), 훈야(文屋), 아리하라(在原), 후지와라(藤原), 미나코토(源), 다치바나(橘) 등 여러 성씨도 섞여서 임명되었다. 그러나 죠간 8년(貞観,876) 무네사다왕(棟貞王)이 보임한 이후는 오(王)씨가 임명되는 예가 많아지고, 에이만 원년(永万,1165) 가잔(花山)천황의 후예인 아키히로왕(顕広王)이 하쿠에 임명된 이후는 그 자손인 시라카와하쿠오가(白川伯王家)가 세습하였다. 이후에는 진기관 관련 업무를 통괄하는 일 및, 제사를 엄수하는 일을 중심적인 직무로 하고, 가마쿠라(鎌倉)시대 후기의 유파인 스케오왕(資緒王)과 스케미치왕(資通王) 부자가 『니혼쇼키(日本書紀)』의 연찬에 힘썼는데, 독특한 교의나 교학을 표방하기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진기관이면서 원래 시라카와가의 하급관료인 요시다가(吉田家)가 무로마치(室町)시대의 당주인 요시다 카네토모(吉田兼倶)대에 요시다신도의 학설을 확립한 것에 반해, 시라카와가가 신도설을 형성해간 것은 에도(江戸)시대 초기의 당주 마사타카왕(雅喬王) 때였다. 마사타카오는 간분 9년(寛文,1669) 레이겐(霊元)천황의 명령에 따라 『伊勢三箇之御伝授』를 헌상하고, 같은 해 「鏡御拝御相伝事」를 저작하였는데, 그 가운데에 거울의 덕을 설명하고, 마음에 아무것도 모아두지 말고, 또 허무하지 않는 것에, 신의 비밀이라고 할 만한 본질을 볼 수 있다라는 핫케신도의 발아적 학설을 기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사타카왕은 시라카와 핫케가의 고래의 전승을 정리하고, 엔포 8년(延宝,1680)에 「主上御拝御相伝事」이하 45항목에 달하는 『家説略記』를 편찬했다. 하쿠오가와 요시다가는 함께 진기관 계통의 씨족이긴 하지만, 양가에는 직책상의 차이가 있었다. 하쿠오가는 역대 진기관을 통괄하고, 나이시도코로(内侍所) 및 핫신덴(八神殿)의 봉사에 임하는 한편, 배알의 방법을 천황, 황족, 섭관(摂関,摂政과 関白)에게 전수해 왔다는 자가(自家)의 입장을 주장했다. 실제로 당시, 시라카와가는 천황을 매일 배알하는 대관(代官)이나 구게(公家)들에게 봉폐(奉幣)의 방법을 전수하는 것을 비롯하여 단절되었던 기년제(祈年祭)이하의 영제제사(令制祭祀)를 사이로(斎籠)라는 형식으로 엄수하는 등, 진기관의 전통 계승에 힘쓰고 있었다. 따라서, 마사타카왕의 주장은 조정안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이고, 막부(幕府)도 시라카와가에게는 특히 하쿠의 급료 30석(百俵)을 내렸다.
근세 초기에 핫케신도 형성의 기운이 일어난 배경에는 요시다신도의 교학적 융성 외에, 요시가가 자가의 신도설을 지렛대로 삼아서, 막부의 후원 하에 지방신사를 지배하에서 조직하기 시작했던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하쿠오가는 원래 마츠오(松尾), 이나리(稲荷), 히로다(広田), 히노미사키(日御碕)등의 여러 신사의 관리를 담당해 왔지만, 근세 초기에는 몇개의 신사만이 소속되어 있었다. 마사타카왕은 요시다가와 경합할 생각은 결코 없었지만, 열세를 만회할 필요성은 통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의지는 아들 마사미츠왕(雅光王)에게 이어졌고, 요시다신도에 대항하기 위해 마사미츠왕은 하쿠오가에 처음으로 학두(学頭)를 두고, 우스이 마사타네(臼井雅胤)에게 학설의 조직과 그 내용의 충실을 꾀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스이카신도의 영향을 받은 마사토미왕 시대인 호레키 4년(宝暦,1754)에는 『家説略記』를 기반으로 하쿠오가(伯王家) 기록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伯家部類』를 편찬하였다. 호레키 12년에는 학두인 모리 마사타네(森昌胤)도 『神道通国弁義』를 저작하고 교학을 한층 더 확충시키는데 노력을 다했다. 교학이 형성되어간 시기에, 소속 신사와 입문자가 증가했고, 요시다가와 동일하게 '神拝式許状', '風折鳥帽子, 浄衣, 白指袴 허가장' 등 여러가지 허가장을 발급하여 세력의 확대를 도모했다. 분카 13년(文化,1816), 하쿠오의 이름으로 기록한 『神祇伯家学則』는 핫케신도의 대요를 기록한 것인데, 이 책에 실린「伯家条目」에 의하면 핫케신도의 근간은 “신도라는 것은 만국에 있어서 일반적인 대도이며, 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다. 천황과 쇼군이 일체된 것이며, 법령이 나오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이 책의 편찬에 협력한 히라다 아츠타네(平田篤胤)는 덴포 11년(天保,1840) 학두에 취임하여, 핫케신도의 보급에 크게 공헌하였다. 따라서 핫케신도는 국학의 영향도 받게 되었다. ➠요시다신도(吉田神道)
후지모리 카오루(藤森 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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