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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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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Category 2 중세・근세의 유파와 학파(中世・近世の流派と学派)
타이틀(Title)
스이카신도
일본어표기
垂加神道
본문(Text) 에도(江戸)시대 초기의 유학자로 신도가(神道家)인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斎)가 창도한 신도. 중세 이래의 각 신도설을 집대성한 유교적 신도로, 국학이 대두할 때까지는 신도의 이론적 지주의 하나로서 구게(公家), 부케(武家)나 신관(神職) 등 구별없이 널리 침투되었다. 안사이는 청년기에 출가했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왔고, 도사번(土佐藩)의 가로(家老)인 노나카 켄잔(野中兼山)의 보호하에, 해남학파(海南学派)의 주자학을 배우고, 나중에 교토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의 주자학 연구는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명나라의 『四書大全』, 『五経大全』, 『性理大全』(科挙의 교과서) 등에 따르지 않고, 『朱子語類』나 『朱子文集』 등의 원전에서 직접 주자를 배웠다. 그것이 동시에 공자의 가르침, 이어서는 요(堯), 순(舜), 우(禹) 등의 성인의 가르침을 체득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는 방침에 따라 주자(朱子)의 저서를 엄밀히 비교・고증하고, 타자의 주석에 따르지 않고 직접 주자의 사상을 밝히고자 노력했다. 안사이는 간분 5년(寛文,1665) 48세 때, 당시의 도쿠가와 4대 장군인 이에쓰나(家綱)의 후견인이었던 호시나 마사유키(保科正之)에게 초빙되어, 마사유키가 죽을 때까지 8년간 번주(藩主)를 섬겼다. 그는 유학자가 아닌 빈시(賓師,손님대우)로 봉사하였는데, 아이즈번(会津藩)에 커다란 사상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안사이는 유학자로서 매우 저명했던 동시에 신도가이기도 했다. 주자학을 통해서 리(理)란 우주 유일의 것이고, 만인・만물이 나누어져 벽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안사이는 이러한 리가 일본에서는 어디에 해당되는가에 대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리가 일본에서는 아메노미나카누시의 심신(心神)에 해당되고, 우리들의 심장(마음)에 머물고 있다고 확신했다. 유교에서는 태어나면서 인륜의 길을 실천하는 생지안행(生知安行)의 사람(성인), 학문에 의해 실천하는 학지이행(学知利行)의 사람, 구심참담(苦心惨憺)한 끝에 실천하는 곤지면행(困知勉行)의 사람이라는 세가지의 과정을 두고 있는데, 어느 것을 통하든 이를 달성한 이는 성인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한다. 안사이는 그 가르침을 『니혼쇼키(日本書紀)』 신대권(神代巻)에 있는 신들의 활동에서 찾았다. 아마테라스를 생지안행의 성인, 스사노오와 오나무치는 곤지면행의 성인이라 하고, 모두를 아마테라스의 덕의와 일체가 된 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도 큰 신의 덕의와 일체가 되도록 수양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러한 생각에서 스이가신도에서는 도(道)는 ‘日神(天照大神)之道’이며, 가르침은 ‘猿田彦가 인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주자에서 얻은 경(敬)의 수행을 신도에 응용시키고, 그것을 기도와 정직에서 구했다. 그는 아마테라스의 덕의와 일체가 되기 위해서는 일심불란(一心不乱)하게 신에게 기도하고, 한점의 먼지도 없는 심신의 청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신명으로 통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이 아마테라스의 신칙(神勅)에서 뽑아낸 스이카신도에서 특히 중요시하는 ‘신수기도(神垂祈祷), 명가정직(冥加正直)’의 의미이다. 안사이가 요시카와 코레타리(吉川惟足)로부터 요시다신도를 전수받았을 때에 얻은 영사호(霊社号) ‘스이카(垂加)’는 바로 그러한 칙어에서 채택한 것으로, 안사이 스스로가 그러한 호를 희망했다고 한다. 스이카신도에서는 토금(土金)의 전(伝)과 함께 천인유일지전(天人唯一之伝)을 제일 먼저 가르친다. 이 두가지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신대(神代)를 이해할 수 없고 신대에서 인대(人代)로 변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도 알 수 없고, 신대 즉 인대나 ‘세이시(生祠)’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안사이는 군신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저술하였다. 즉, 아마테라스는 일신(日神)임과 동시에 황조(皇祖)이기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천인 유일(唯一)의 구현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도(道)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도(신도)는 즉 천황의 도가 된다. 실제로 천양무궁(天壌無窮)의 신칙(神勅)과 같이, 일본의 국체(國體)도, 다카마노하라(高天原)에서 천손강림(天孫降臨)과 함께 내려진 삼종의 신기(神器)도 모두 불변하며, 그것을 일신으로 받드는 천황은 면면히,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군신관계도 신대부터 변하지 않고 있는데, 그런 이유로 군신의 도는 절대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일반적으로 유학자나 신도가는 천황이 부덕하면 유덕한 황자로 바꿀 수 있다로 하였는데, 안사이는 이 설을 시해나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상당히 두려워했다. 충효일치(忠孝一致)・군신합체수중지도(君臣合体守中之道)를 중요시하는 스이카신도로서는 신대로부터 이어지는 군신관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은 절대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세신도의 ‘左左右右’, ‘元元本本’의 가르침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그러므로 만약에 그러한 사태가 일어났다고 하면, 신민(臣民)인 우리들은 목숨을 걸고 군신관계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신들이나 우리들 모두 혹은 만물은 아마테라스들의 가호, 즉 하늘의 가호(天之御蔭)와 태양의 가호(日之御蔭)를 받고 있어 큰 은혜를 입고 있다고 했다. 스이카신도에서 삼종신기전(三種神器伝)과 함께 가장 중요시 여기는 히모로기이와사카노덴(神籬磐境之伝)은 바로 이 군신합체수중지도(君臣合体守中之道)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요시다신도와 같이, 도통자 유일인의 가르침이 아닌 만인이 공유해야하는 가르침이고, 『中臣祓風水草』는 그 가르침을 위해서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안사이는 국체와 함께 신대부터 전해지고 만인이 공유해야 하는 것으로서 신도를 생각하고 폐쇄적인 가학(家学)신도에서 신도를 해방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사이가 사망한 후 다마키 마사히데(玉木正明)나 아토베 요시아키라(跡部良顕) 등에 의해 많은 가르침이 비전(秘伝)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와카바야시 쿄사이(若林強斎)는 안사이의 진의가 보이지 않게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안사이가 죽은 후, 우린가(羽林家)의 오기마치 킨미치(正親町公通)가 스이카신도의 후계자가 되었다. 문인인 우에다 곤바이(植田艮背)나 시부카와 하루미(渋川春海)는 쓰치미카도 야스토미(土御門泰福)가 되기를 희망하고, 다니 진반(谷 秦山)이나 와카바야시 쿄사이(若林強斎)는 나중에는 아사미 케이사이(浅見絧斎)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안사이의 요망에 따라 킨미치로 정해졌다. 이것은 스이카신도를 천황에게 전하는 것이 대명제(大命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스이카신도는 안사이의 만년부터 에도 중기에 걸쳐 신도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윽고 국학・복고신도(復古神道)의 흥륭과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쇠퇴해 갔다. 그러나, 국학・복고신도의 전개를 미리 준비한 면도 있다.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斎)
니시오카 카즈히코(西岡和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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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ika Shint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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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이카(垂加)신도 문인도(門人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