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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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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Category 2 중세・근세의 유파와 학파(中世・近世の流派と学派)
타이틀(Title)
고류신도
일본어표기
御流神道
본문(Text) 료부(両部)신도에 속하는 신도설로, 고류란 본래 법황(法皇)・법신왕(法親王)의 법류(法流)를 가리키는 말이다. 덧붙이면 도미츠 히로사와류(東密広沢流)의 근본이 되는 여섯개 유파의 하나로 고류(御流,仁和寺御流)가 있는데 이것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여겨진다. 그 호칭이 처음 나온 것은 오닌 26년(応仁,1419)에 편찬된 료헨(良遍)의 『日本書紀第一聞書』에 “산보인 고류(三宝院御流)라고도 하고 혹은 신도라고도 해서 여러 지방에서 사용한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정착한 것은 중세 후기 이후로 보이며, 중세 말기의 저작인 『神祇秘記』(真福寺文庫蔵)에는 신도 12류의 하나로서 ‘고류신도’라는 이름을 들고 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고류의 유래를 천신칠대(天神七代) 지신오대(地神五代)이래로 천황가에 대대로 계승되어 오던 것으로 소개하였다. 또 52대 사가(嵯峨)천황 때 천황이 구카이(空海)에게 내린 것으로 고고류(故御流)로 칭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설은 여러 책에서 널리 보이며, 미와류(三輪流)신도도 포함된 료부신도 전체의 기원설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과는 별도로 다이시류(大師流)신도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고보다이시(弘法大師) 구카이와 연관된 것이다. 고류신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가마쿠라(鎌倉) 후기에 무로사(室生寺)에 살았던 엔카이(円海)가 그 시조이지 않았을까라는 설이 있다(久保田収『中世神道の研究』). 무로라는 지역에는 옛날부터 구카이가 이 지역에 여의보주(如意宝珠)를 묻었다고 하는 신앙이 있는데, 가마쿠라 초기 이후 그 구슬의 수적(垂迹)을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太神)로 한다는 설이 나왔다. 그 설을 전한 『宀一山秘密記』에는 겐쵸 2년(建長,1250)에 쓴 후기가 있어서(琴堂文庫本), 이미 이 때부터 이 지역에서 료부신도적 언설이 양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엔카이는 일설에 의하면, 이세의 산포원류(三宝院流)의 거점이고, 또 료부신도설의 발신지였던 세기사(世義寺)를 중흥시켰다고도 하는 인물이다. 고류신도의 각종 혈맥에는 이 엔카이의 이름이 반드시 등장하는데, 아마도 그나 그 주변 사람들에 의해 무로의 여의보주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라는 신앙과 이세에서 전개되고 있던 료부신도설을 결합한 신도설이 제창되어 이것이 나중에 고류신도로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중세 후기 이후가 되면 교설도 정비되어, 팔십통인신(八十通印信)과 횡수유취(横竪類聚)라는 인신집(印信集)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근세 이후도 고야산(高野山) 등에 계승되었지만 요시다(吉田)신도와의 습합이 현저하다고 인정되고 있다.
이토 사토시(伊藤 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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