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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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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Category 2 중세・근세의 유파와 학파(中世・近世の流派と学派)
타이틀(Title)
오기마치신도
일본어표기
正親町神道
본문(Text) 오기마치 킨미치(正親町公通,1653~1733)가 스이카(垂加)신도를 천황을 비롯한 조정의 신하(廷臣)들에게 전한 것에서 시작된다. 킨미치는 엔포 8년(延宝,1680)에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斎)에게 서약문(神道誓文)을 제출하고, 본격적으로 스이카신도를 배움과 동시에 주자학도 수학했다. 안사이는 2년 후인 덴와 2년(天和,1682) 9월 16일에 세상을 떠났고, 그가 사망하기 이틀 전에 안사이의 제자인 이즈모지 노부나오(出雲路信直), 나시키 스케유키(梨木祐之), 마츠모토 타메오키(松本為起)가 스이카신도의 계승자로 킨미치를 추천했다. 안사이도 그것을 인정하고 킨미치에게 스이카신도에서 가장 중시하는 『후스이소(風水草)』의 직필 초고를 주며 자신의 뜻을 부탁했다. 그 후 킨미치는 안사이의 『旧事本紀玄義』의 발췌문을 『自従抄』에서 십종신보(十種神宝)의 중요성을 명시하거나, 다마키 마사히데(玉木正英)와 함께 『후스이소』에서 히모로기이와사카덴(神籬磐境伝)이나 산슈진기덴(三種神器伝)을 발췌해서 『持授抄』를 편찬했다. 이로 인해 문인의 조직화가 촉진되었다. 문인으로는 다마키 마사히데(玉木正英), 오카다 마사토시(岡田正利), 아토베 요시아키라(跡部良顕), 도모베 야스타카(伴部安崇) 등 그 후의 스이카신도의 전개에 공헌한 신도가를 다수 배출했다. 이로 인해 킨미치의 설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한편, 이치죠 카네테루(一条兼輝)를 비롯한 조정의 신하가 문인이 되었다는 것은 오기마치신도의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애당초 킨미치가 스이카신도의 계승자가 된 이유는 스이카신도가 조정에 이르는 것을 바라는 안사이의 유지(遺志)에 의한 것이었다. 킨미치는 카네테루와 함께 고사이 상황(後西上皇)에게 『후스이소』를 올렸는데 이것을 읽은 상황이 이는 비전(秘伝)으로 전해져야 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후 그의 가르침이 오기마치신도로 칭해졌다. 그리고 카네테루의 아들, 관백(関白)인 이치죠 카네카(一条兼香)는 레이겐(零元), 히가시야마(東山), 나카미카도(中御門)의 세 천황에게 신호(神号)를 받았다. 킨미치, 카네테루, 카네카의 진력으로 조정에까지 이른 오기마치신도, 즉 스이카신도는 조정의 신하들 사이에서 유행하여 존황사상을 각성시켰고, 그 후의 제의(祭義) 재흥운동의 발화점이 되었다. ➠오기마치 킨미치(正親町公通)
니시오카 카즈히코(西岡和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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Ōgimachi Shint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