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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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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Category 2 중세・근세의 유파와 학파(中世・近世の流派と学派)
타이틀(Title)
우덴신도
일본어표기
烏伝神道
본문(Text) 가모노 노리키요(賀茂規清,우메츠지노 노리키요梅辻規清,1798~1861)가 제창한 신도의 교설. 노리키요는 가모와케이카즈치(賀茂別雷)신사 집안 출신이고, 전래되어온 신전(神伝)을 기반으로 가르침을 세웠다고 한다. 가모씨의 조상인 야타카라스(八咫烏)로부터 전해진 신도라는 의미로 ‘우덴신도’라고 칭한다. 그 교의는 하늘에서 사용되는 ‘가’, 즉 양(陽)과 땅에서 사용되는 ‘미’, 즉 음(陰)의 결합에 의해 자연과 인륜에 공통되는 모든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것이 ‘가미의 도(道)’, 즉 ‘신도(神道)’라고 했다. 그리고 60이 넘는 많은 저서에서, 그는 천문에서 일상생활에 이르는 여러가지 장면에서의 신도적인 모습을 실례와 비유를 사용해서 다양하게 설명하였다. 특히 『니혼쇼키(日本書紀)』 신대권(神代巻)에서는 천지인의 도를 간결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하여 중요시하고, 그 해석을 교설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인심을 안정시킨다는 관점에서 사회개조의 방책도 구상했다. 『불조심방법(火の用心仕方)』에서는 가로대와 회반죽을 이용한 방화건축으로 화재를 막음과 동시에, 각 마을내에 히코노야시로(彦の社)와 히메노야시로(姫の社)라는 학교와 도서관을 설치하고, 생활이 빈궁한 자를 돕는 공제금 제도를 두어 ‘심화(心火)’를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 외에도 『蟻廼念』, 『太平船歌』 등에서는 도시의 유민으로 하여금 벌판 개척과 늪, 못 등의 간척에 취로(就労)하게 해서 생활을 안정하게 함과 동시에, 치안의 향상과 국력의 증강을 설명하고 이것을 막부에 건의했다. 이와 같이 노리키요의 교설이 공상적이기는 해도 당시의 사회적 과제였던 여러가지 문제에도 대응하려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던 것과 민중에게 인기가 있던 점이 막부의 의심을 받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교의면 외에 주로 치병을 목적으로 정좌를 지도하거나 ‘신적퇴치산(神敵退治散)’이라는 약을 처방하기도 했다.
노리키요에게는 덴포(天保) 연간부터 문인이 있었던 것 같다. 고카 3년(弘化,1846)에는 에도의 즈이우엔(瑞烏園) 외 2곳에 교장(教場)을 열고, 신도강석(神道講釈)과 많은 저술로 민중교화 활동을 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는 지샤부교(寺社奉行)를 맡아 정도(政道)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하치죠섬(八丈島)으로 유배되었다. 그 후는 장남인 노부키요(呈清)가 중심이 되어 유배지에서 보낸 교서를 기반으로 활동을 진행했다. 하지만, 노부키요도 안세 2년(安政,1855)에 세상을 떠난다. 그 후 문인들의 활동은 미상이지만, 메이지 전기까지는 노리키요의 교설을 받드는 신슈쿄소요교회(神習教双葉教会), 신칸교회(支干教会) 등의 교단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모노 노리키요(賀茂規清)
오기하라 미노루(荻原 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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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en Shintō